묘법연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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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천태종 부산 금정산 광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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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연화경
『묘법연화경』은 천태종의 소의경전입니다.
부처님이 설하신 많은 가르침 가운데 그 깨달으신 내용을 그대로 드러낸 법화경은 천태종의 사상과 철학뿐만 아니라 신앙과 수행의 근본이 되었습니다.

천태종 소의경전 『묘법연화경(법화경)』에 대하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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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1-28 13:27 조회2,04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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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속에도 경권수지(經卷受持) 하는 구절이 많습니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법화경을 공양하고 수지독송해 오고 있으며,

법화경 사경이 많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 같은 법화신앙은 석가모니 부처님에 의지해 성불에 이르고 그 공덕을 믿고 따르는 데 있습니다.

 

 <법화경>이 우리나라에 전하여진 것은 고려의 대각국사가 천태종을 개창조하기

훨씬 이전인 삼국시대 때였습니다.

이미 백제의 현광(玄光)이 중국 천태 제2조인 스승 혜사(慧思)로부터 법화삼매를 증득하고 돌아와

웅주에서 법화삼매 수행법을 널리 전했습니다.

, 고구려의 바야(波若)는 천태지의 대사로부터 법을 받은 제자로 국청사(國淸寺) 화정봉에서

두타행을 닦고 불롱사(佛壟寺)에 와 교화를 펴다 국청사에서 입적한 우리나라 최초 천태 승려라

할 수 있습니다.

 

신라 연광(緣光)은 신라 진평왕 때의 승려로, 권세 있고 이름 높은 가문의 출신이었습니다.

부처님을 지성으로 믿어 일찍이 좋은 인연을 만나 스님이 되었습니다.

눈에 본 것은 반드시 기억했으며 마음을 둔 것은 반드시 깨달았으며, 

출가하여 수도 정진하다 충분치 못함을 깨닫고 중국으로 가 천태 지의대사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 실천과 공부를 은밀히 하니 수년 안에 도를 맑고도 크게 깨우쳤습니다.

스승 지의대사에게서 증오(證悟)를 인가받은 뒤 <법화경> 강설을 허락받고 처음 설법을 하자 당대의

이름 있는 고승과 석학들이 모두 그의 강설에 감복하였다고 합니다.

연광은 80세에 입적 후 화장을 했는데 혀만이 타지 않았다는 설화가 전해 집니다.

연광의 두 누이가 그 혀를 거두어 공양했는데 혀가 자주 법화경을 독송하는 소리를 내고,

모르는 글자가 있어 물어보면 모두 일깨워 주었다고 합니다.

 

<법화경>은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의 삼승(三乘)이 일불승(一佛乘)의 하나로 돌아간다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의 논리에 입각해 있습니다.

일불승의 가르침은 가장 뛰어난 교법으로, 이를 아름답고 빼어난 흰 연꽃에 비유함으로써

그 위대함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싹을 틔우지만 이는 진흙에 물들지 않는 점 때문에,

오탁악세의 더러운 세상에서도 이와 같이 깨달음의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에 비유되는 것입니다.

 

 

<법화경> 수행은 우선 경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항상 지니고, 때때로 독송하며, 경을 베껴 쓰고,

또한 남에게 권하여 가르치는 것 등으로, 이 덕목들은 경 곳곳에서 설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 진()나라의 혜사선사는 당시 유행하던 선수행과 법화경 독송에 의해서 법화삼매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후 천태지의는 혜사를 찾아가 사안락행을 받고 다시 법화삼매를 깨닫게 됨으로써, 법화경 수행으로

법화삼매 체득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법화삼매 수행법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위 자료는 관문사 홈페이지 불교자료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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